무자년 아침. e-메일을 확인하던 나는 발신자가 쥐의신장(子 神將)이라는 메일 한통을 받았다. 경주 통일전으로 찾아오시오
‘개견이인사 불개일인사(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 ‘사금갑(射琴匣)’ 나는 암호문 같은 초대장을 받고 쥐의 신장을 찾아 떠났다.
경주 남산동 통일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파는 편의점을 돌아 왼쪽으로 돌아가니 안내각 하나가 보인다.
개견이인사 불개일인사 (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는다.’는 암호같은 구절. 쥐의 신장이 나에게 보낸 첫 번째 힌트다. 연꽃이 다 져버린 연못 하나와 ㄱ 자형 조그만 정자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화려했던 연꽃이 다 져버린 음산한 분위기의 연못.
서출지(書出池) 이요당(二樂堂).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저수지라고 알려진 서출지와 조선시대 임적이라는 사람이 새운 이요당(二樂堂)이라는 정자. 서출지는 무자년 쥐의 해를 맞이해 요즘 부쩍 관심이 늘고 있는 곳이다.
쥐의 신장이 보낸 초청장을 해독하는 방법은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 사금갑(射琴匣) 에 잘 나와있다.
신라 21대 소지왕(488) 정월 보름날, 명활산성에서 옛 궁성이던 월성으로 대궐을 옮겨 놓고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해 천천정에 행차했다.
그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다.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라”고 말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말을 탄 장수(騎士)에게 명해 쫓게 했다.
까마귀는 동남 산으로 날아갔고, 장수는 까마귀의 뒤를 따라갔다. 까마귀는 장수를 기다는 듯이 일천바위 위에 잠깐 앉았다가 피리마을 양기못 쪽으로 날아갔다.
장수도 부지런히 뒤를 쫓아 양기못으로 갔다. 양기못 가에서는 큰 산돼지 두 마리가 무섭게 싸우고 있었다.
돼지 싸움을 정신없이 구경하던 장수가 풍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까마귀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게 됐다.
장수는 왕명을 어겼으니 큰 벌을 받게 되었다고 못가를 두어 번 돌다 주저앉아 버렸다.
이때 못에서 파문이 일더니 하얀옷을 입은 노인이 물속에서 나타나서 “그대는 이 글을 급히 왕께 갖다 바치라”하며 한 장의 봉투를 주고는 다시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장수는 너무도 뜻밖아라 절을 하고 달려와서 글을 왕께 바쳤다. 왕은 글을 받아 열어보니 봉투 속에 또 하나의 봉투가 들어 있는데 그 봉투위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으리라.”(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라고 적혀 있었다.
왕은 두 사람이 죽는 것 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나은 일이니, 열어보지 말도록 하자 하고 그 봉투를 덮어 놓았다. 이 때 “아닙니다. 한 사람이라 한 것은 왕을 가리키는 말이옵고, 두 사람이라 함은 평민을 가리키는 말이오니 그 봉투를 열어봐야 합니다.”하고 옆에 있던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왕도 하는 수 없이 그 봉투를 열고 글을 읽었다. 거문고 갑을 활로 쏘라는 사금갑(射琴匣)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왕은 곧 돌아와서 왕비의 침실 모퉁이에 세워놓은 거문고 갑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쿵! 화살이 박힌 거문고 갑에서는 피가 흘러 내렸다. 거문고 갑을 열어 봤더니 대궐안에서 불공을 맡아 보던 중이 궁주와 짜고 그 날 밤 왕을 해치려고 거문고 갑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무자년 쥐띠해를 맞아서는 쥐와 관련된 설화로 많이 거론 되고 있는 이 이야기는 민간신앙과 불교간의 충돌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되기도 한다.
그간 서출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연꽃 때문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연꽃이 다 지고 없지만 연꽃이 만발한 여름철이면 꽃을 구경하기 위한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이 알음알음 모여든다.
또 밤에도 연꽃을 볼 수 있도록 은은한 조명을 비춰줄 수 있는 조명 장비가 준비돼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설법을 하실 때에도 연꽃의 비유를 많이 들었다.
연꽃은 깨끗한 물에서는 살지 않는다. 더럽고 추하게 보이는 물에 살지만 그 더러움을 조금도 자신의 꽃이나 잎에는 묻히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불자(佛子)가 세속에 처해 있어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아름다운 신행(信行)의 꽃을 피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연꽃의 봉오리의 모습이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경건히 서 있는 불자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해 불교의 상징적인 꽃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서출지 서북쪽에 소박하고 우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이요당(二樂堂)이다.
조선 현종 5년 임적이라는 사람이 못가에 정자를 짓고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각집의 ㄱ 자형 이요당 건물은 풍천 임씨 종부댁의 개인 소유이다.
문이 잠겨 이요당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저물어 버린 연꽃을 바라보니 허난설헌의 연꽃 따는 노래가 생각났다.
못가에 우거진 수백년된 배롱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서출지 걷다가 보니 쥐의 신장이 초대한 또 한사람을 만났다.
남산을 올라가려다가 서출지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포항에서 온 사진작가.
“도착시간이 너무 늦어 남산을 못 갔어요. 그런데 서출지에 한번 와 보고 싶더라구요”
사진 작가는 말을 이었다.
“서출지의 연꽃은 입추 전후가 가장 아름답고 특히 아침의 연꽃은 환상적이지요”.
“그러나 화려한 서출지의 연꽃을 준비하는 겨울철의 서출지도 매력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 준비 없는 결과가 어디 있겠어요?”
이름 모를 사진작가의 말을 곱씹으려 서출지 주위를 다시 한바퀴 돌았다.
서출지를 한 바퀴 돌고 보면 꼭 한 세월을 돈 것 같다.
채련곡(采蓮曲) - 허난설헌
맑고 넓은 가을 호수
푸른 옥처럼 물빛 빛나는데
연꽃 가득 핀 깊숙한 곳에
목련나무 배 한척 매어 두었네
님을 보자 물 건너로
연밥 따서 던졌지
행여 누가 보진 않았나
한나절 내내 부끄러워라.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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